익꿍's Life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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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스님이 올린 SNS 게시물들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현각스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각스님은 어떤 스님이길래 많은 이들이 관심을 표하는 걸까?

현각스님에 대해 알아보자

현각스님에 대해 아래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현각스님의 본명은 폴 뮌젠으로 출생은 1964년 11월 28일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올 해 나이는 57세이다.

출가는 1996년에 통도사에서 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조지프 뮌젠, 어머니는 패트리샤 뮌젠이다.

그는 불교계에서도 굉장히 고학력자로 유명한데 예일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수료했다.

불교 내 종파는 조계종이며,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맡았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써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톨릭계 사립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적인 방황을 겪었으며 결국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다.

대표적인 유태인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에 한국 절을 지은 승려 무량, 청안과 더불어 꽤나 알려진 한국 불교로 귀의한 외국인 승려 중 한명이다.

현각스님의 유년기

어린 시절은 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 동부의 전형적 중산층이었으며,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청소년기 친하게 지냈던 사촌이 고통스럽게 교통사고로 인해서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자각하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후에 부모가 졸업했던 예일대에 진학했으며, 이 때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하고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했다고 한다.

1989년에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허가서를 받은 후에 학비를 벌 목적으로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대표적 물질주의 사회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끼도 당시에 '자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투신하려는 찰나 우연히 만난 흑인 거지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곤 마음을 바꾸고 어짜피 죽을 생각이었으므로 그 거지에게 돈을 다 털어서 적선했더니 거지가 "오늘이 네 생일이야.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게 될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현각 자신은 이 당시 거지가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이후에 하버드에서 비교철학에 대해 공부하던 도중에 일본인이었던 당시의 지도교수가 숭산스님의 하버드 강연에 참석을 권하게 되면서 한국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숭산스님

※숭산은 1970년대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며 세계 방방곡곡 한국의 선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해외에서는 달라이 라마, 마하 고사난다, 틱낫한 스님과 더불어 세계 4대 생불 중 한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결국 이 날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버드를 휴학하며 1990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고, 계룡산 신원사에서 90일 동안거를 마친후에 학업을 계속 했지만 결국 1992년에 정식으로 출가하게 된다.

1992년에 육조 혜능대사가 모셔진 중국의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으며 출가했으며 1996년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고, 2001년 8월 화계사에서 숭산스님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은 것이다.

한국에서 현각스님이 유명해진 이유

한국에서 현각스님이 유명해진 이유를 아래에서 알아보자.

 

 

출처 KBS, YES24 홈페이지

현각스님은 한국에서 1990년대에 했던 KBS 일요스페셜 2부작 '만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명해졌다.

만행의 뜻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만행'이라함은 불교의 수행의 일종이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문화를 익히고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일컬어 '만행'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는 뒤이어서 책을 출간하고 그 책의 이름 역시 '만행'으로 부제는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이다.

한국 불교에 실망한 현각스님(한국 불교를 떠난 것은 아니다?)

 

 

 

 

현각스님이 당시 작성한 Facebook

한국 불교에 몸담은 외국인 출신의 스님이라는 이유로 유명세를 탔지만, 결국 기복신앙적 한국 불교에 회의감을 느끼고 2016년 7월 28일에 페이스북에 한국 불교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한국 불교를 떠날 것을 발표했다.

조계종이 화계사 국제선원을 해체시킨 것과 더불어 결국 자신은 한국 조계종의 장식품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복=$'이라는 표현을 적으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현각스님은 이후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 불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가 미숙해서 자신의 말이 뉘앙스가 달라졌으며, 이로 인해서 언론 보도가 와전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한국 불교의 교육방법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며 귀중한 그릇"이라고 표현하면서 숭산 큰 스님의 말씀을 독일에서 이어나가면서 한국 불교를 세계에 퍼뜨리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각스님의 근황

현각스님의 근황을 아래에서 알아보자.

 

 

 

 

논란 이후에는 언론에 모습을 거의 비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20년 그는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2016년 본인이 설립한 사찰 불이선원에 상주하면서 독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한국식 불교를 포교중이라고 한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한국의 불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자 한다면 'cloudpath108'을 검색하면 된다.

'What is ZEN?'이라는 주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각스님이 재조명받는 이유?

현각스님이 재조명 받는 이유는 무엇일지 아래에서 알아보자.

 

 

 

 

현각스님이 지금 다시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그가 2020년 11월 15일에 다른 승려를 저격해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비판의 대상은 바로 <혜민>스님이며, 주요내용들을 살펴보자면,

1. 석지 마! 연애인뿐이다. 일체 일체 일체 일체 석가모니의 가르침 전혀 모르는 도둑놈 뿐이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 뿐이야..

2. "그는 단지 사업자이자 배우일 뿐이다. 진정으로 참선한 경험이 없다"의 뉘앙스의 말을 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3. 내 친 가족은 내가 내 <만행>책 로열티를 나이든 부모님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거부했다. (생략)

나는 한국인 숭산스님에게 100% 보시했다.(가족에게는 한국에서 팔린 책으로 나온 로열티를 아예 주지 않았음)

현각스님의 일화(독립군 윤회설)

현각스님의 일화도 다양한데 그 중 하나를 아래에서 알아보자.

 

 

 

 

그가 1991년엔 계룡사의 신원사에서 수행을 하던 도중에 다른 스님의 방에서 한국 민요 혹은 전통가요 같은 것이 흘러나와 그것을 들었는데 울컥하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너무 신기해서 자신의 스승인 숭상에게 이야기 했더니 "너는 전생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던 독립군이었는데 일본인들에게 총을 맞아 죽으면서 부강한 나라에 태어나서 한국을 돕기를 기원했던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에 의거해서 숭산스님이 이야기 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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