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프로필(+나이 치매 유년기 아내 재혼)

    미국 대통령으로 조바이든이 거의 확실시 되면서 그의 인생에 대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잘 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의 풀네임은 Joseph Robinette Biden Jr. (조셉 로비넷 바이든 주니어)이다.

    가장 큰 경력은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당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상원의장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여섯번째 최연소 상원의원

    바이든은 1942년생인데 1970년도부터 의원이 되었다.

    한국나이로 2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상원의원이 된 것이다.

    당시에 미국에서 여섯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91년에는 걸프전에 반대하는 인물 중 하나로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었으며 폭력범죄와 범죄통제에 대한 법안을 특히 많이 냈다.

    민주당의 주축의원중 한명답게 여성폭력에 대한 법에도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재 대선의 슬로건은 <Build back better>, 즉 더 나은 미국을 위해 돌아가자. 더 나은 미국을 위한 복귀 를 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유년기

    바이든의 유년기에 대해 아래에서 알아보자.

    왼쪽사진의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바이든이다

    바이든은 1942년 11월 20일에 펜실베니아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태어난다.

    바이든의 집은 가톨릭 집안이었으며 바이든은 장남으로 한명의 자매와 두명의 형제가 있었다.

    바이든의 할아버지는 볼티모어 출신의 석유사업가였다. 할아버지가 석유사업가이기 때문에 부자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작 바이든이 태어나기 전부터 집이 가난해지기 시작해서 아버지는 직업도 없다가 중고차 딜러가 된다.

    바이든은 학창시절 미식축구를 했는데, 뛰어난 하프백과 와이드 리시버였다고 한다.

    또한 야구도 했다고 하는걸보니 운동신경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완벽한 수트핏도 그 때문인가?)

    그의 저서에서 보면 그의 학창시절은 가난했다고 한다. 학점평균은 C점으로 688명중에서 506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공부가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든 치매 논란?

    바이든의 치매 논란에 대해 아래에서 알아보자.

     

    어린 바이든에게는 또래 아이들과 다른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이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다.

    일부 미국의 언론에서는 지금도 이 습관이 남아있어 인터뷰나 토론에서 실언을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설하는 모습을 찾아보면 말을 더듬는 ex)I...I...I....have a d...d...dream 과 같은 영상이 꽤나 보인다.)

    또한 트럼프가 바로 그를 보고 치매노인이라고 놀린다.

    유튜브에는 그가 실언을 한 순간을 모아서 하나의 동영상으로 모아놓은 것들도 많다.

    아무래도 조 바이든 후보의 나이가 굉장히 고령이다보니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며, 그 나이에는 젊은 사람에 비해 인지 기능에 장애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치매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치매는 초기단계에도 확실히 티가 난다. 즉 기본적 사칙연산을 못하거나 망상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의 연설을 들어보면 말실수가 가끔 있을뿐이지 그가 치매증상을 보이듯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매라고 하는 것은 그의 말실수를 놀리는 차원에서 그의 안티나 상대 진영에서 지어낸 말로 보인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노화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은 공화당이었다? YES !

    바이든이 공화당이었던 이야기를 아래에서 알아보자.

    미국공화당(좌)와 미국민주당(우) 엠블럼 출처 - dreamstime.com

    대학은 시라큐스 로스쿨에 입학한다. 1966년에는 아내인 넬리아 헌터를 만나서 결혼했으며, 당시에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라 신검을 받았는데 베트남전에는 천식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8년 대학을 85명중 76등으로 졸업했으며, 그는 현재 민주당이지만 공화당원이 되려고 했으며 공화당에도 들어가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

    하지만 리처드 닉슨을 혐오하기 시작하면서 공화당에서 마음이 뜬다.

    1969년에 본격적으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힘있는 자들의 편에 서기 싫다며 국선변호사를 자처하며 민주당원이 이끄는 회사에 들어가서 민주당원이 된다.

    1972년 민주당으로 선거에 나가서 당시에 닉슨이 설득해서 내보낸 후보 보그스를 이기며 미국에서 여섯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된다.

    보그스는 닉슨이 밀어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보그스와 붙지 않으려 했는데 어린 바이든이 해낸 것이다.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가족들에게 선거캠프를 부탁하고 대부분 자신의 발로 뛰어서 유권자와 소통을 통해서 결과를 만들어냈다.

    당시의 공약은 베트남전쟁 반대 그리고 대중교통의 개선 그리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당시 바이든이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는 많은 이들의 공화당에 대한 반감이었다.

    바이든 아내와 딸의 사망사고와 그 이후

    바이든 아내와 딸의 사망사고에 대해 아래에서 알아보자.

    같은 해 12월 크리스마스 전 18일 슬프게도 아내와 딸이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살아남은 아들은 다리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골절되고 바이든은 아들들의 간호를 위해서 사임을 생각하지만 마이크 맨스필드가 설득해서 의원직을 이어간다.

    질 제이콥스

    상원의원 생활을 이어가던 1977년에 영어교사 제이콥스와 재혼하고 그를 아내로 맞이한다.

    1988년에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어린 나이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만 연설표절의혹 때문에 경선을 포기한다.

    이후에 여러가지 법안들을 발표하는데 가장 먼저 환경문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법안 그리고 이어서 낙태에 대한 법안과 노인케어 법안, 93년에는 동성애자는 군대생활을 할 수 없다고 발언하면서 동시에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법안을 발표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동시에 군비통제법안을 많이 내는데 미국의 공화당은 국방비 예산을 어마어마하게 책정하고 그만큼 군수회사들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곳인데, 바이든은 이 법안을 낼 당시 뒤에 있는 군수업체들과 공화당에게 미움을 많이 사게 된다.

    바이든은 총기규제론자이기도 하며, 권총이나 산탄총(샷건), 사냥용 총은 현실적으로 허가를 해야 하지만, AR-15와 같은 화력이 좋은 군용 총기는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지나치기에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고있다.

    그 이후에는 2008년까지 총 36년을 상원의원으로 지냈으며 91년 걸프전에는 반대를 했던 반면에 부시가 이라크의 침공에는 찬성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안티도 많이 생겼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줄 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바마와 한 배를 타다

    2008년에는 대통령경선에 또 출마하지만 중간에 중단한다.

    여기서 중도표를 끌어모으기 위해서 오바마는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지정한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선거과정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부통령을 비롯한 내각을 어떻게 꾸릴지 알리면서 선거를 해 나간다.

    2008년 오바마행정부가 꾸려지며 부통령으로 재임을 시작한다.

    2012년 오바마가 다시 부통령으로 정하면서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 오바마와 사이가 틀어질뻔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이 바로 동성결혼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을 오바마가 내비치며 합법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바이든과 상의없이 하여 가톨릭의 표심을 잃지 않기위해서 천천히 진행하자는 바이든의 생각이 묵살되면서 마찰이 있었고, 바이든은 덕분에 동성애자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찬성을 하게 된다.

    2016년 대선 이후 바이든의 행보

    2016년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선이 열리고, 바이든도 원래 출마하려고 준비했으나 클린턴의 지지율이 낮아진 후에 자신이 나갈 생각이었으나 클린턴은 지지율이 낮아지는 일이 생기지 않고, 오바마가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자 그 이후 바이든도 그녀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이번 대선에 출마하게 된 것이다.

    We've got to vote for joebiden.라고 말하는 오바마.

    사실 바이든이란 인물을 보면 시기와 주변 인물을 잘 만나서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미국에서도 바이든이라는 인물을 물론 지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이든만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오바마가 바이든을 지지하며 그의 인기가 흑인과 이민자들에게 많은 몰표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트럼프와는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마치고 외교의 활성화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관계 재창조를 통해서 미국을 더 나은 미국으로(Build back better)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WHO에도 재가입하고 친환경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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